부르심-이해인

나는 
한번도
숨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날 내가 흰 깃을 치며
무인도로 날아 버린
시인 같은 물새였을 때

뽕잎을 갉아 먹고 
긴 잠에 취해 버린
꿈꾸는 누에였을 때

해초 내음 즐기며
모래 속에 웅크린
바다빛 껍질의 조개였을 때

깊은 가슴 속으로
향을 피우던
수백만개의 햇살

찬란한 당신 앞엔
눈 못 뜨는 나

부르시는 그 사랑을
듣게 하소서

무량의 바다 위에
두 팔을 벌리고
소리치는 태양이여

당신에겐
순명하여
피리부는 바람

춤추는 파도로
뛰어가게 하소서

 

 

기도 - 이해인

오늘 가장 깊고 낮은 목소리로
당신을 부르게 해 주소서

더 많은 이들을 위해
당신을 떠나 보내야 했던
마리아의 비통한 가슴에 꽂힌
한 자루의 어둠으로 
흐느끼게 하소서

배신의 죄를 슬피 울던
베드로의 적절한 통곡처럼
나도 당신 앞에
겸허한 어둠으로 
엎드리게 하소서

죽음의 쓴 잔을 마셔
죽음보다 강해진 
사랑의 주인이여

당신을 닮지 않고는
내가 감히 사랑한다고
뽐내지 말게 하소서

당신을 사랑했기에
더 깊이 절망했던 이들과 함께

오늘도 돌무덤에 갇혀
한 점 칙칙한 어둠이게 하소서

빛이신 당신과 함께 잠들어
당신과 함께 깨어날
한 점 눈부신 어둠이게 하소서

 

 

마음을 위한 기도 - 이해인

늘 푸른 소나무처럼 한결같은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사고 기도합니다. 

자신이 맡은 일에 정성을 다하는 성실함, 
어떤 모양으로든지 관계를 맺는 이들에게는 
변덕스럽지 않은 진실함을 지니고 
매일을 살고 싶습니다. 


힘겨운 시련이 닥치더라도 
쉽게 좌절하지 않고 견디어내는 
참을성으로 한 번 밖에 없는 삶의 길을 
끝까지 충실히 걷게 해 주십시오. 

숲속의 호수처럼 고요한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사고 기도합니다. 

시끄럽고 복잡하게 바삐 돌아가는 
숨찬 나날들에도 방해를 받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는 마음의 고요를 
키우고 싶습니다. 


바쁜 것을 핑계로 자주 들여다보지 못해 
왠지 낯설고 서먹해진 제 자신과도 
화해할 수 있는 고요함, 

밖으로 흩어진 마음을 안으로 모아들이는 
맑고 깊은 고요함을 지니게 해 주십시오. 


고요한 기다림 속에 익어가는 
고요한 예술로서의 삶을 
기대해 봅니다.


마음이 소란하고 산만해질 때마다 
시성 타고르가 그리 한것 처럼 저도 
‘내 마음이여,조용히, 내 마음이여, 
조용히' 하고 기도처럼 고백하고 싶습니다. 


하늘을 담은 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사고 기도합니다. 

지나친 편견과 선입견으로 남을 
가차없이 속단하기 보다는 폭넓게 이해하고 
포용하는 너그러움을 지니고 싶습니다. 


내 가족, 내 지역, 내 종교만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마음을 넓히는 
시원함으로 나라를, 
겨레를, 세계를 좀 더 넓게 바라보고 
좀 더 넓게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 


밤새 내린 첫눈처럼 순결한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사고 기도합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악과 타협하지 않고 
거짓과 위선을 배격하는 정직한 마음, 
탐욕에 눈이 멀어 함부로 헛된 맹세를 하지 않으며, 
작은 약속도 소홀히 하지 않는 
진지함을 지니고 싶습니다. 


감각적인 쾌락에 영혼을 팔지 않으며, 
자유와 방종을 혼돈하지 않는 지혜로움, 
어린이 같은 천진함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는 
용기를 지니게 해주십시오. 

사랑의 심지를 깊이 묻어둔 등불처럼 따뜻한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사고 기도합니다. 

기뻐하는 이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이와 함께 슬퍼할 수 있는 
부드럽고 자비로운 마음, 
다른이의 아픔을 값싼 동정이 아니라 
진정 나의 것으로 느끼고 눈물 흘릴 수 있는 
연민의 마음을 지니고 싶습니다.

 
남에 대한 사소한 배려를 잊지 않으며,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따뜻한 마음, 
주변에 우울함 보다는 기쁨을 퍼뜨리는 밝은 마음, 
아무리 속상해도 모진 말로 상처를 주지 않는 
온유한 마음으로 하루하루가 
평화의 선물이 되게 해 주십시오. 

가을들녘의 볏단처럼 익을수록 고개숙이는 
겸손한 마음을 주십사고 기도합니다. 

부끄러운 약점과 실수를 억지로 감추기보다는 
오히려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마음, 
자신의 잘못을 비겁하게 남의 탓으로 
미루지 않는 겸허함을 지니고 싶습니다. 


다른이의 평판때문에 근심하고 불안해하거나 
초조해 하지 않는 의연함을 
잃지 않게 해 주십시오. 


‘내일은 내가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몰라’ 
하는 깨어있음으로 삶의 유한성을 받아들이며, 
오늘 해야 할 용서를 내일로 미루지 않는 
겸손함을 지니게 해 주십시오. 

살아있는 동안은 나이에 상관 없이 
능금처럼 풋풋하고 설레이는 
마음을 주십사고 기도합니다. 

사람과 자연과 사물에 대해 
창을 닫지 않는 열린 마음, 
삶의 경이로움에 자주 감동할 수 있는 
시인의 마음을 지니고 싶습니다. 


타성에 젖어 무디고 둔하고 메마른 삶을 
적셔줄 수 있는 예리한 감성을 
항상 기도로 갈고 닦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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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기도-이해인

1월에는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소서
그동안 쌓인 추한 마음 모두 덮어 버리고
이제는 하얀 눈처럼 깨끗하게 하소서.

2월에는
내 마음에 꿈이 싹트게 하소서
하얀 백지에 내 아름다운 꿈이
또렷이 그려지게 하소서.

3월에는
내 마음에 믿음이 찾아오게 하소서.
의심을 버리고 믿음을 가짐으로
삶에 대한 기쁨과 확신이 있게 하소서.

4월에는
내 마음이 성실의 의미를 알게 하소서.
작은 일 작은 한 시간이 우리 인생을 결정하는
기회임을 알게 하소서.

5월에는
내 마음이 사랑으로 설레게 하소서.
우리 삶의 아름다움은 사랑 안에 있음을 알고
사랑으로 가슴이 물들게 하소서.

6월에는
내 마음이 겸손하게 하소서.
남을 귀히 여기고 자랑과 교만에서
내 마음이 멀어지게 하소서.

7월에는
내 마음이 인내의 가치를 알게 하소서.
어려움을 참고 오랜 기다림이 없는 열매는
좋은 열매가 아님을 알게 하소서.

8월에는
내 마음에 쉼을 주시옵소서
건강을 지키고 나와 남을 여유 있게 볼 수 있는
쉼을 갖는 시간을 갖게 하소서.

9월에는
내 마음이 평화를 느끼게 하소서.
마음의 평화는 내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성숙할 때 함께 자라는 것임을 알게 하소서.

10월에는
내 마음이 은혜를 알게 하소서.
나의 오늘이 있게 한 모든 이들의 은혜가
하나하나 생각나게 하소서.

11월에는
내 마음이 욕심을 버리게 하소서.
아직도 남아 있는 욕심과 미움과 갈등을 버리고
빈 마음을 바라보면서 만족하게 하소서.

12월에는
내 마음에 감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계획한 일을 이루었던 이루지 못했던
지난 한 해의 모든 것을 감사하게 하소서.

 

 

새해 마음-이해인

늘 나에게 있는
새로운 마음이지만
오늘은 이 마음에
색동옷 입혀
새해 마음이라 이름 붙여줍니다

일 년 내내
이웃에게 복을 빌어주며
행복을 손짓하는
따뜻한 마음

작은 일에도 고마워하며
감동의 웃음을
꽃으로 피워내는
밝은 마음

내가 바라는 것은
남에게 먼저 배려하고
먼저 사랑할 줄 아는
넓은 마음

다시 오는 시간들을
잘 관리하고 정성을 다하는
성실한 마음

실수하고 넘어져도
언제나 희망으로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겸손한 마음

곱게 설빔 차려입은
나의 마음과 어깨동무하고
새롭게 길을 가니
새롭게 행복합니다.

 

12월의 기도-이해인

또 한해가 가 버린다고
한탄하며 우울해 하기 보다는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을 
고마워 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 주십시오

한 해 동안 받은
우정과 사랑의 선물들
저를 힘들게 했던 슬픔까지도
선한 마음으로 봉헌 하며
솔방울 그려진 감사 카드 한장
사랑하는 이들에게
띄우고 싶은 12월

이제 또 살아야지요
해야 할 일들 곧 잘 미루고
작은 약속을 소홀히 하며
나에게 마음 닫아 걸었던
한 해의 잘못을 뉘우치며
겸손히 길을 가야 합니다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는 제가
올해도 밉지만
후회는 깊이 하지 않으렵니다

나를 키우는데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
진정 오늘 밖에 없는 것처럼
시간을 아껴 쓰고
모든 이를 용서 하면
그것 자체가 행복일텐데
이런 행복까지도
미루고 사는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 하십시오

보고 듣고 말 할것
너무 많아 멀미 나는 세상에서
항상 깨어 살기 쉽지 않지만
눈은 순결하게
마음은 맑게 지니도록
고독해도 빛나는 노력을
계속하게 해 주십시오

12월엔 묵은 달력을 떼어 내고
새 달력을 준비 하며
조용히 말 하렵니다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 날이여
나를 키우는 데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 들이여...

 

 

오늘을 위한 기도-이해인

오늘 하루의 길 위에서

제가 더러는 오해를 받고 
가장 믿었던 사람들로 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쓸쓸함에 
눈물 흘리게 되더라도 

흔들림 없는 발걸음으로  
길을 가는 인내로운  
여행자가 되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 제게 맡겨진 시간의  
옷감들을 자투리까지도 아껴쓰는  
알뜰한 재단사가 되고 싶습니다. 

하고 싶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일과 
하기 싫지만 꼭 해야 할 일들을 
잘 분별할 수 있는 슬기를 주시고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 밖에는  
없는 것 처럼 투신하는 
아름다운 열정이 제 안에  
항상 불꽃으로 타오르게 하소서 

제가 다른 이에 대한 말을 할때는 
사랑의 거울 앞에 저를 다시  
비추어 보게 하시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남과 비교하느라 
갈 길을 가지 못하는 어리석음으로 
오늘을 묶어 두지 않게 하소서 

몹시 바쁠때 일 수록 잠깐이라도  
비켜서서 하늘을 보게 하시고 

고독의 층계를 높이 올라  
해면이 더욱 자유롭고 풍요로운 
흰옷의 구도자가 되게 하소서 

제가 남으로부터 받은 은혜는 
극히 조그만 것이라도 다 기억하되 
제가 남에게 베푼 것에 대해서는 

아무리 큰 것이라도  
잊어버릴 수 있는 아름다운  
건망증을 허락 하소서 

오늘 하루의 숲속에서 
제가 원치 않아도 
어느새 돋아나는 우울의 이끼, 

욕심의 곰팡이 
교만의 넝쿨들이 두렵습니다.


그러하오나 주님 
이러한 제 자신에 대해서도 
너무 쉽게 절망하지 말고 
자신의 약점을 장점으로 바꾸어가는 
꿋꿋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게 하소서 

어제의 열매이며 
내일의 씨앗인 오늘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 때는 
어느 날 닥칠 저의 죽음을 
미리 연습해 보는 겸허함으로 
조용히 눈을 감게 하소서


모든것에 감사했습니다 
모든 것을 사랑했습니다 
나직이 외우는 저의 기도가 
하얀 치자꽃 향기로 
오늘의 잠을 덮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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