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연가-이해인

 

가르쳐 주시지 않아도

처음부터 알았습니다.

 

나는 당신을 향해 날으는

한 마리 순한 나비인 것을

 

가볍게 춤추는 나에게도

슬픔의 노란 가루가

남몰래 묻어 있음을 알았습니다.

 

눈멀 듯 부신 햇살에

치라리 날개를 접고 싶은

황홀한 은총으로 살아온 나날

 

빛나는 하늘이

나의 것임을 알았습니다.

 

행복은 가난한 마음임을

가르치는

풀잎들의 합창

 

수없는 들꽃에게 웃음 가르치며

나는 조용히 타버릴

당신의 나비입니다.

 

 

사랑도 나무처럼-이해인

 

사랑도 나무처럼

사계절을 타는 것일까?

 

물오른 설레임이

연두빛 새싹으로

가슴에 돋아나는

희망의 봄이 있고

 

태양을 머리에 인 잎새들이

마음껏 쏟아내는 언어들로

누구나 초록의 시인이 되는

눈부신 여름이 있고

 

열매 하나 얻기 위해

모두를 버리는 아픔으로

눈물겹게 아름다운

충만의 가을이 있고

 

눈속에 발을 묻고

홀로 서서 침묵하여 기다리는

인고의 겨울이 있네

 

사랑도 나무처럼 그런 것일까?

 

다른이에겐 들키고 싶지 않은

그리움의 무게를

바람에 실어 보내며

오늘도 태연 한 척 눈을 감는

나무여 사랑이여...

 

 

사랑의 사계절-이해인

 

봄에는

연두빛 새싹을 닮은

쉼표의 설렘으로

 

여름에는

소나기를 닮은

감탄사의 열정으로

 

가을에는

산바람을 닮은

말 없음표의 감동으로

 

겨울에는

하얀 눈을 닮은

물음표의 기도로...

 

사랑은 언제나

다시 시작하는 계절로

상징적인 암초로

나를 행복하게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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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는-이해인

돌아도 끝없는
둥근 세상

너와 나는
밤낮을 같이하는
두 개의 시곗바늘

네가 길면
나는 짧고
네가 짧으면
나는 길고

사랑으로 못 박히면
돌이킬 수 없네

서로를 받쳐 주는 원 안에
빛을 향해 눈 뜨는
숙명의 반려

한 순간도
쉴 틈이 없는
너와 나는

 

 

너에게 가겠다-이해인

오늘도
한줄기 노래가 되어
너에게 가겠다

바람 속에 떨면서도
꽃은 피어나듯이

사랑이 낳아준
눈물 속에
하도 잘 익어서 
별로 뜨는 나의 시간들

침묵할 수록 맑아지는
노래를 너는 듣게 되겠지

무게를 견디지 못한
그리움이 흰 모래로
부서지는데

멈출 수 없는
하나의 노래로
나는 오늘도
너에게 달려가겠다

 

너에게-이해인(너에게 띄우는글-중-)

 

비는 싫지만 소나기는 좋고
인간은 싫지만 너만은 좋다.
내가 새라면 너에게 하늘을 주고
내가 꽃이라면 너에게 향기를 주겠지만
나는 인간이기에 너에게 사랑을 준다.

 

 

해바라기연가-이해인

내 생애가 한 번뿐이듯
나의 사랑도
하나입니다
나의 임금이여
폭포처럼 쏟아져 오는 그리움에
목메어

죽을 것만 같은 열병을 앓습니다
당신 아닌 누구도
치유할 수 없는
불치의 병은

사랑
이 가슴 안에서 
올올이 뽑은 고운 실로
당신의 비단 옷을 짜겠습니다
빛나는 얼굴 눈부시어
고개 숙이면
속으로 타서 익는 까만 꽃씨

당신께 바치는 나의 언어들
이미 하나인 우리가
더욱 하나가 될 날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나의 임금이여
드릴 것은 상처뿐이어도
어둠에 숨지지 않고
섬겨 살기 원이옵니다

 

 

슬픈날의 편지-이해인

모랫벌에 박혀 있는 
하얀 조가비처럼 
내 마음속에 박혀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슬픔 하나 
하도 오래되어 정든 슬픔 하나는 
눈물로도 달랠 길 없고 
그대의 따뜻한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다른 이의 슬픔 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듯이 
그들도 나의 슬픔 속으로 
깊이 들어올 수 없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지금은 그저 
혼자만의 슬픔 속에 머무는 것이 
참된 위로이며 기도입니다

슬픔은 오직 
슬픔을 통해서만 치유된다는 믿음을 
언제부터 지니게 되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항상 답답하시겠지만 
오늘도 멀찍이서 지켜보며 
좀 더 기다려 주십시오

이유없이 거리를 두고 
그대를 비켜가는 듯한 나를 
끝까지 용서해 달라는 
이 터무니 없음을 용서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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