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나무처럼/이해인 수녀님

사랑이 너무 많아도
사랑이 너무 적어도

사람들은
쓸쓸하다고 말하네요

보이게
보이지 않게

큰 사랑을 주신 당신에게
감사의 말을 찾지 못해
나도 조금은 쓸쓸한 가을이에요

받은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내어놓은 사랑을 배우고 싶어요

욕심의 그늘로 괴로웠던 자리에
고운 새 한마리 앉히고 싶어요

11월의 청빈한 나무들처럼
나도 작별 인사를 잘하며
갈 길을 가야겠어요

 


11월에  - 이해인 수녀님

나뭇잎에 지는 세월
고향은 가까이 있고

나의 모습 더없이
초라함을 깨달았네

푸른 계절 보내고
돌아와 묵도하는
생각의 나무여

영혼의 책갈피에
소중히 끼운 잎새

하나 하나 연륜 헤며
슬픔의 눈부심을 
긍정하는 오후

햇빛에 실리어 오는
행복의 물방울 튕기며
어디론지 떠나고 싶다

조용히 겨울을 넘겨보는
11월의 나무 위에

연처럼 걸려 있는
남은 이야기 하나

지금 아닌
머언 훗날

넓은 하늘가에
너울대는
나비가 될 수 있을까

별밭에 꽃밭에
나뭇잎 지는 세월

나의 원은 너무 커서
차라리 갈대처럼
여위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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