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노래-이해인

가을엔 물이 되고 싶어요
소리를 내면 비어 오는
사랑한다는 말을
흐르며 속삭이는 물이 되고 싶어요

가을엔 바람이고 싶어요
서걱이는 꽃 웃음에 취해도 보는
연한 바람으로 살고 싶어요

가을엔 풀벌레이고 싶어요
별빛을 등에 업고
푸른 목청 뽑아 노래하는
숨은 풀벌레로 살고 싶어요

가을엔 감이 되고 싶어요
가지 끝에 매달린 그리움 익혀
당신의 것으로 바쳐 드리는
불을 먹은 감이 되고 싶어요

 

가을의 말 - 이해인

하늘의 흰 구름이
나에게 말했다

흘러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흐르고 또 흐르다 보면
어느날
자유가 무엇인지 알게 되리라

뜨락의 석류가
나에게 말했다

상처를 두려워하지 마라
잘 익어서 터질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면

어느날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리라

 

가을편지 - 이해인

가을엔 들꽃이고 싶습니다
말로는 다 못할 사랑에
몸을 떠는 꽃

빈 마음 가득히 하늘을 채워
이웃과 나누면 기도가 되는
숨어서도 웃음 잃지 않는
파란 들꽃이고 싶습니다

유리처럼 잘 닦인 마음밖엔
가진 게 없습니다
이 가을엔 내가...

당신을 위해 부서진
진주빛 눈물 당신의
이름 하나 가슴에 꽂고
전부를 드리겠다 약속했습니다

가까이 다가설 수 록
손잡기 어려운 이여
나는 이제 당신 옆에
무엇을 해야 합니까

시인 이해인님의 가을편지 중...

 

나뭇잎 러브레터 - 시인 이해인

당신이 내게 주신
나뭇잎 한 장이
나의 가을을
사랑으로 물들입니다.

나뭇잎에 들어 있는
바람과 햇빛과
별빛과 달빛의 이야기를
풀어서 읽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한 장의 나뭇잎은
또 다른 당신과
나의 모습이지요?

이 가을엔 나도
나뭇잎 한 장으로
많은 벗들에게
고마움의 러브레터를
쓰겠습니다.

 

들국화 - 이해인

웃음 잃고 피어난 연보랏빛 꽃
하늘만 믿고 사는 푸른 마음 속에

바람이 실어다 주는
꿈과 같은 얘기

멀고 먼 하늘 나라의 얘기
구름 따라 날던
작은 새 한 마리 찾아주면

타오르는 마음으로
노래를 엮어

사랑의 기쁨에 젖어보는
자꾸 하늘을 닮고 싶은 꽃

오늘은 어느 누구의 새하얀 마음을 
울려주었나

또 다시 바람이 일면
조그만 소망에
스스로 몸부림치는 꽃…

<이해인 수녀가 중학교 시절 쓴 시 ‘들국화’>

 

가을편지 - 이해인
<1>
그 푸른 하늘에
당신을 향해 쓰고 싶은 말들이
오늘은 단풍잎으로 타버립니다

밤새 산을 넘은 바람이
손짓을 하면
나도 잘 익은 과일로
떨어지고 싶읍니다
당신 손 안에

<2>
호수에 하늘이 뜨면 
흐르는 더운 피로
유서처럼 간절한 시를 씁니다

당신의 크신 손이
우주에 불을 놓아
타는 단풍잎

흰 무명옷의 슬픔들을
다림질하는 가을

은총의 베틀 앞에
긴 밤을 밝히며
결 고운 사랑을 짜겠읍니다

<3>
세월이 흐를수록 
드릴 말씀은 없읍니다

옛적부터 타던 사랑
오늘은 빨갛게 익어
터질 듯한 감홍시
참 고마운 아픔이여

<4>
이름 없이 떠난 이들의
이름 없는 꿈들이
들국화로 피어난 가을 무덤가

흙의 향기에 취해
가만히 눈을 감는 가을
이름 없이 행복한 당신의 내가
가난하게 떨어져 누울 날은
언제입니까

<5>
감사합니다, 당신이여
호수에 가득 하늘이 차듯
가을엔 새파란 바람이고 싶음을
휘파람 부는 바람이고 싶음을
감사합니다

<6>
당신 한 분 뵈옵기 위해
수없는 이별을 고하며 걸어온 길
가을은 언제나
이별을 가르치는 친구입니다

이별의 창을 또 하나 열면
가까운 당신

<7>
가을에 혼자서 바치는
낙엽빛 기도

삶의 전부를 은총이게 하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의 매일을
기쁨의 은방울로 쩔렁이는 당신
당신을 꼭 만나고 싶읍니다

<8>
가을엔 들꽃이고 싶읍니다.
말로는 다 못할 사랑에
몸을 떠는 꽃

빈 마음 가득히 하늘을 채워
이웃과 나누면 기도가 되는
숨어서도 웃음 잃지 않는
파란 들꽃이고 싶읍니다

<9>
유리처럼 잘 닦인 마음 밖엔
가진 게 없읍니다
이 가을엔 내가
당신을 위해 부서진
진주빛 눈물

당신의 이름 하나 가슴에 꽂고
전부를 드리겠다 약속했읍니다

가까이 다가설수록
손잡기 어려운 이여
나는 이제 당신 앞에
무엇을 해야 합니까

<10>
이끼 낀 바위처럼
정답고 든든한 나의 사랑이여

당신 이름이 묻어 오는 가을 기슭엔
수 만 개의 흰 국화가 떨고 있읍니다
화려한 슬픔의 꽃술을 달고
하나의 꽃으로 내가 흔들립니다

당신을 위하여
소리없이 소리없이
피었다 지고 싶은

<11>
누구나 한번은
수의를 준비하는 가을입니다
살아온 날을 고마와하며
떠날 채비에
눈을 씻는 계절

모두에게 용서를 빌고
약속의 땅으로 뛰어가고 싶읍니다

<12>
낙엽 타는 밤마다
죽음이 향기로운 가을

당신을 위하여
연기로 피는 남은 생애
살펴 주십시오

죽은 이들이 나에게
정다운 말을 건네는
가을엔 당신께 편지를 쓰겠읍니다

살아남은 자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아직은 마지막이 아닌
편지를 쓰겠읍니다

 

<이해인님의 시집 가을편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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