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엽서 - 안도현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곳에 있는지를


가을은 고추잠자리 날개를 타고/함동진

강아지풀 살랑일 때
가을은 고추잠자리 날개를 타고

벼포기들은 너 봤니, 너 봤니
다투어 서로 보려다 이삭이 
쑥쑥 자라지요


똘똘 또르르 풀숲 귀뚜리 노래에
매미울음 기세 꺾여 
파란 하늘 높은 하늘 되고

더위에 선잠 보채던 우리 아가 
사르르 조을다
코스모스 닮은 미소 지으며
새근새근 방글방글 단 꿈 꾸어요.



가을의 구도-노천명

바람이 수수밭 사이로
우수수 소리를 치며 설레고

지나는 밤엔 들국화가 
달 아래 유난히 희어 보이고

건너 마을 옷 다듬는 소리에
차가움을 머금었습니다.

친구여 잠깐 우리가 멀리 합시다.
호수 같은 생각에 혼자 가만히
잠겨 보고 싶구료

은행잎 편지 - 김한룡

물 위에 동동
은행 잎 한 잎
띄어 보내자.

이사 간 순이에게
편지 보내자.

네 살던 집 앞마당
은행나무에

요렇게노오란 
가을이 다.

낙엽 - 구르몽

시몬, 나뭇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나뭇잎 밟는 발자국 소리가

가을에 - 양성우

슬퍼마라 
우리 다시 기다림의 시를 쓰자

가을은 이미 그릇에 넘치고
보아라 새벽 달도 바람에 우는구나

정든 사람들 모두 길 떠났으니
이 거칠고 마른 나이에
누가 아니 근심하랴.

꿈이 아님에도 오히려 
내 땅에서 낯설고

그러나 허리 굽혀 이삭을 주우며
우리 연가를 부르듯이
기다림의 시를 쓰자.

그리움 - 이명구

오늘은 우체국에 가서 실컷 울어버린 
낙엽을 한아름 소포로 보냈습니다.

멀리 시집간 딸애와,  
모래 바람에 눈 비비며 보초를 
서고 있을 아들놈이
뜨겁게 보고 싶어 한아름 보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내 뒤를 
누가 잡아끌어 뒤를 보면 
아무도 없고

지는 해가 나를 보고 웃으며 
안부를 전한다.
굼벵이도 기어가는 재주가 있다고.

가을 햇볕 - 안도현

가을 햇볕 한마당 고추 말리는 
마을 지나가면 가슴이 뛴다

아가야
저렇듯 맵게 살아야 한다

호호 눈물 빠지며 밥 비벼먹는
고추장도 되고

그럴 때 속을 달래는 찬물의 빛나는
사랑도 되고

아버지의 가을/정호승

아버지 홀로
발톱을 깎으신다

바람도 단풍 든
가을 저녁에

지게를 내려놓고
툇마루에 앉아

늙은 아버지 홀로
발톱을 깎으신다

하얀 들꽃 같은 당신/오광수

마음 속이지 마세요.
하얀 들꽃 같은 작은 손이
지금
파르르 떨림을 아세요?

억지로 무심한 척 하지마세요.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지금
흔들리고 있습니다.

빨간 계절 같은 마음으로
제게 다가오세요.
당신이 타고 갈
하얀 배가되어 기다립니다.

흘러가는 저 구름에게
미련들은 다 맡기고
이제 노란 낙엽 밟으며
그렇게 오세요.

내 마음은 당신을 향해
닻을 올렸습니다.
당신이 가리키는 대로
배를 띄우렵니다.

마음 속이지 마세요.
눈가에 맺힌 하얀이슬이
지금
내 마음에 바다가 되었습니다.

가을에 비가 오는 까닭은/오광수

가을에 비가 오는 까닭은
님의 얼굴 잊지말라는 뜻입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나를 향해 있을 님의 눈에는
보고픔이 하나 가득 눈물이 되어

이렇게 하늘 구름 따라
내 앞에서 내리기 때문입니다.

가을에 비가 오는 까닭은
님의 목소리 잊지말라는 
뜻입니다.

귀에는 들리지 않아도
나를 위해 부르시는 님의 노래는

그리운 맘 하나 가득 빗소리 되어
이렇게 하늘 바람 따라
내 앞에서 들리기 때문입니다.

가을에 비가 오는 까닭은
님의 마음을 잊지말라는 
뜻입니다.

손을 잡고 있진 않아도
나를 항상 찾는 님의 손길이

기다리는 마음 가득 사랑이 되어
이렇게 하늘 빗물 따라
내 맘에서 흐르기 때문입니다.

가을이 되면/오광수

가을이 되면
훨 훨 그냥 떠나고 싶습니다

누가 기다리지 않더라도
파란 하늘에 저절로 
 마음이 열리고

울긋 불긋 산 모양이 전혀 
낯설지 않는
그런 곳이면 좋습니다

가다가 가다가 목이 마르면
노루 한마리 목 추기고 지나갔을
옹달샘 한 모금 마시고

망개열매 빨갛게 익어가는 
숲길에 앉아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래 들으며
반쯤은 졸아도 좋을 것을,

억새 꺾어 입에 물고 하늘을 보면
짓궂은 하얀 구름이
그냥 가질 않고

지난날 그리움들을 그리면서
숨어있던 바람불러  향기 만들면
코스모스는 
그녀의 미소가 될겁니다

가을이 되면  텅 비어있던 
가슴 한쪽이 문을 열고
나 혼자의 오랜 그리움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기다림이 되어
그렇게 그렇게
어디론가  훨 훨 떠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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