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에서/시인이해인 수녀님

 

하얀 눈 밑에서도

푸른 보리가 자라듯

 

삶의 온갖 아픔 속에서도

내 마음엔 조금씩

푸른 보리가 자라고 있었구나

 

꽃을 피우고 싶어

온몸이 가려운 매화 가지에도

 

아침부터 우리집

뜰 안을 서성이는

 

까치의 가벼운 발걸음과

긴 꼬리에도

봄이 움직이고 있구나

 

아직 잔설이 녹지 않은

내 마음의 바위 틈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일어서는 봄과 함께

내가 일어서는 봄 아침

 

내가 사는 세상과

내가 보는 사람들이

모두 새롭고 소중하여

 

고마움의 꽃망울이

터지는 봄

 

봄은 겨울에도 숨어서

나를 키우고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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